간단한 복습
“복음의 다섯 단어” 시리즈의 지난 세 편의 글에서 우리는 죄, 심판, 죄책이라는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첫 번째 글에서는 죄란 하나님께 불순종하거나 이웃을 부당하게 대함으로써 하나님의 기준이라는 “과녁을 빗나가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두 번째 글에서는 우리가 이 과녁을 빗나갔기 때문에 그에 따른 결과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 결과를 시행하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세 번째 글에서는 죄책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죄책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며 공부를 이어 가겠습니다.
구원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쓰는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구원받으셨습니까?” 이것은 충분히 물어볼 만한 질문입니다. 어쨌든 “구원”은 성경에서 한 사람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가리키는 말이니까요. 하지만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다소 알쏭달쏭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받는다”는 것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의 행위를 가리키는 데 쓸 수 있는 다른 단어들도 있지만, 간단하게 “구원받다”라는 말을 쓰겠습니다. 성경에서 “구원받다”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 소조(sozo)에서 왔는데, 이는 “안전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질문은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한다는 것인가?”가 됩니다. 앞서 죄와 심판에 관한 글에서 배운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이나 이웃에게 잘못된 행동을 하여 죄를 짓고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심판 바로 앞에 세우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부당하게 대하면 자연스러운 결과가 따르기 때문에 우리의 죄에 이 땅에서의 결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넘어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고도 무사히 넘어간다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의 잘못은 결국 벌을 받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면 다음 세상에서 말입니다. 다음 세상에서 받는 이 형벌이 바로 지옥, 그리고 불못이라고도 불리는 영원한 심판입니다. 구원은 바로 이것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옥이란 정확히 무엇일까요?
지옥이란 무엇인가?
지옥은 본래 인류를 위해 마련된 곳은 아니었지만,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이 죽은 후에 가게 될 곳입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자신의 잘못된 행위로 인해 불못에서 영원히 심판받을 때를 기다리게 됩니다. 이곳은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길이 없는 곳입니다. 그것은 최종적입니다. 그곳은 어둠의 장소, 불이 너무 뜨겁게 타서 검게 보일 정도인 곳입니다. 그곳에는 사람에게 기쁨을 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완전한 어둠과 영원한 고통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좋은 소식은 아무도 억지로 그곳에 가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필요한가?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당신도 포함됩니다! 어쨌든 우리를 지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니까요! 하나님은 누구도 지옥에 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베드로후서 3:9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께서 옳은 일을 행하셔야 하며 죄를 심판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결과를 시행하지 않으신다면, 그분은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의롭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살인자가 재판을 받고 있는데 판사가 그 살인자에게 “음, 당신이 살면서 좋은 일도 좀 한 것 같으니 사회봉사 일주일을 선고합니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대중의 거센 항의가 일어날 것입니다! 몇 가지 선한 행동, 이 경우에는 사회봉사가 어떻게 이 사람이 살인자라는 사실을 덮을 수 있겠습니까? 분명히 그럴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선행도 우리 삶의 죄를 덮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선행을 해도 이미 저지른 일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친구 사이에 큰 신뢰가 깨졌을 때, 그 결과를 정말로 없던 일로 만들 수 있을까요?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 친구가 만회하려고 아무리 많은 좋은 일을 해도, 그 친구의 신뢰성에 대해서는 아마 늘 어느 정도 의심이 남을 것입니다. 우정이 부분적으로 회복될 수는 있겠지만, 신뢰를 깨뜨린 사람에게 다시 비밀스러운 정보를 맡기기 전에는 분명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관점에서조차 선한 행동이 잘못을 덮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과연 해결책이 존재하기는 할까요?
하나님의 계획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되돌릴 수 없고 형벌은 반드시 시행되어야 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친히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나서셨습니다. 죄가 없고 한 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는 누군가가 이 “죄의 빚”에 대한 형벌을 대신 치러야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에 대한 형벌을 자기 자신에게 지우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그분은 형벌을 받으시고 영적인 벌금을 갚으셔서, 사람이 무죄로 선언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라는 이름의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자 완전한 사람이셨고, 인간의 몸을 입은 하나님의 충만함이셨으며, 단 한 가지 이유, 곧 우리를 대신해 죽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죄의 형벌이 사망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형벌을 담당하시려면 사람을 대신해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분은 사형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로 이 땅에 오셔서 약 30년 동안 사람들과 함께 죄 없이 사시며, 인류가 어떤 존재가 되기를 원하시는지 가르치고 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이르자, 인류가 자신을 배반하고 거짓 혐의로 로마 당국 앞에 끌고 가도록 기꺼이 허락하셨습니다.
십자가 처형
예수님의 희생은 빠르고 고통 없는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조롱당하시고,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맞으시고, 거의 숨이 끊어질 지경이 되셨으며, 마침내 로마와 유대인 모두에게 정죄를 받아 십자가에서 극심한 고통 속에 죽도록 선고받으셨습니다. (사실 “극심한 고통”을 뜻하는 영어 단어 excruciating 자체가 십자가형의 고통에서 유래했습니다.) 이제 자신의 피로 뒤덮이고 살이 찢겨 드러난 채로, 그분은 십자가를 등에 지고 길을 걸어가셔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지치고 고통스러워 비틀거리시며 더 이상 십자가를 지고 가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군인들은 다른 사람에게 십자가를 처형 장소까지 지고 가게 했습니다. 그곳은 골고다(해골의 곳이라는 뜻)였고, 그들은 그곳에서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을 박아 십자가에 다셨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이 달린 십자가를 들어 올려 제자리에 떨어뜨려 세웠고, 그분을 고통 속에 내버려 둔 채 그분의 옷을 두고 제비를 뽑으며 그분을 조롱했습니다. 몇 시간의 고난 끝에, 인류를 위해 형벌과 고통을 견디신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시며 우리의 죄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이는 곧 이어지는 순간에, 죄 없는 자신의 생명을 자발적으로 내어 주심으로써 인류를 죄의 빚의 결과에서 해방하실 것을 가리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씀하신 후, 그분은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셨습니다. 우주의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를 위해 죽으셨고, 이제 사람은 자유롭게 될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광경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선택
사흘 후 예수님은 무덤에서 살아나셔서 하나님이자 구원자로서 사망을 이기신 승리를 보여 주셨고, 그분의 희생을 통해 이제 인류에게 구원이 주어졌다는 것을 세상에 전하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원이 주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자동으로 적용된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자신을 위한 그분의 희생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개인적인 선택권을 주기로 하셨습니다. 구원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기 죄의 값을 영원히 치르기 원하는 사람은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 삶을 원하는 대로 하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첫 번째나 두 번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선택에는 기한이 있습니다. 우리는 죽기 전에 선택해야 합니다. 그 선물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하지 않은 채 죽는다면 너무 늦습니다.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으니, 지금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선물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실패에 대한 값을 영원히 치르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선택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선택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믿음과 회개
좋은 소식(성경에서는 “복음”이라고 부릅니다)은 당신이 구원을 위해 일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우리가 아무리 옳은 일을 많이 해도 우리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값없이 주십니다. 그분은 오직 그분이 당신을 위해 베푸신 선물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9
당신이 잘못을 저질렀고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사실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당신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시려고 죽으셨다는 것과, 당신이 그 구원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당신은 그것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무런 조건도 붙어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회개하고 선물을 받아들이라고 도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마가복음 1:15
회개라는 말은 단순히 “다시 생각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오늘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좋은 소식을 믿고, 당신을 위한 예수님의 희생을 받아들이십시오. 당신의 죄책과 죄에서 자유로워지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나아오기 위해 선하거나 거룩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구원을 얻기 위해 의롭게 살고 있을 것을 요구하지도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와서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생명을 맛보십시오.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저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그 선물을 받아들이고 싶다고 알려 드리십시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렇게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저의 행동으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했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제 죄에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저의 죗값을 치르심으로 제게 베풀어 주신 구원을 믿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입니다.”
당신이 이 말과 그 의미를 진심으로 믿는다면,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원하는 당신의 소원을 들으실 것입니다. 꼭 이 말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맹세나 서약이 아니라, 그분을 찾는 부드럽고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오늘 제가 구원이 무엇인지 잘 가르쳐 드렸기를 바랍니다.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으셨다면, 오늘 그분을 믿고 그분이 당신의 삶의 일부가 되시도록 하시기를 권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34:8
![구원이란 무엇인가? 복음의 다섯 단어 [4부] 구원이란 무엇인가? 복음의 다섯 단어 [4부]](https://www.nerdintheword.com/wp-content/uploads/2018/03/gospels_five_words_salvation.jpg)

